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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신은 고양이 : 첫째와 둘째는 왜 막내를 내쫒았을까 본문

궁금한건 알아야지

장화 신은 고양이 : 첫째와 둘째는 왜 막내를 내쫒았을까

캬옹몽몽이 2020. 9. 9. 00:17

# 첫째와 둘째는 왜 막내를 내쳤는가?

둘째 박죽이에게 자기 전 동화 '장화 신은 고양이'를 읽어줬다. 문득 동화에 없는 얘기가 궁금했다. 동화의 시작은 이렇다. 늙은 방앗간 주인에게 아들 셋이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게으르고, 막내만 성실해 아버지를 도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자, 첫째와 둘째는 각각 방앗간과 수레, 당나귀를 차지하고 막내에게는 고양이와 헌자루만 쥐어준 채 쫓아냈다. 막내는 허탈하게 주저앉아 "대체 고양이와 자루로 뭘 할 수 있지?"라고 말하니, 고양이가 말을 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장화신은 고양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고양이가 말을 하는 순간부터 현실이 아닌 동화의 시작이며, 그 이후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난 앞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늙은 방앗간 주인이라고 퉁쳤는데, 늙었다는 건 몇살을 의미하는가. 작가 샤를 페로는 1628년생으로 그 당시라면 50세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옛날엔 위생의 개념이 없어 병들어 죽는 이들이 많아 50세만 살아도 오래 산 것이라는 걸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어서다. 아들 셋 중에 왜 둘은 게으르고 막내만 성실했을까. 남매가 아닌 형제라면 성향은 달라도 행동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일반화할 필요는 없지만, 막내만 성실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걸까. 그런데다 막내를 왜 쫒아냈을까. 이야기를 시작하는 배경이 필요했고, 막내가 어려움 속에 혼자 있어야만 하는 동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막내가 쫒겨난 것이다. 이제 배경과 환경이 조성되었고, 소설이 아닌 동화이니, 더이상의 이야기가 진행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형제간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종료.

더 궁금해진다. 아버지와 아들들간의 이야기, 형제들의 이야기. 그들은 꼭 그랬어야 했는지. 그래야만 했던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건지. 위인전이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고 축약하지만, 세상만사 사람 감정이 어디 그리 단편적이던가. 위인전에 나오는 세종대왕의 일화를 보면, 양녕대군은 세종이 왕이 될 재목이라 여기고 일부러 망나니 짓을 했다 하나, 그 당시의 환경과 배경을 읽어보면 그건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 그럼 이야기를 지어내볼까?

그렇다면, 아이들의 동화책에는 배경처럼 쓰이고 사라져 버리는 두 등장인물에게 조명을 비춰보자. 재조명이랄까. 그들의 심경을 들어보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지금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첫째는 본디 성실했으나 아버지는 엄하기만 하여 이를 기꺼이 칭찬하고 인정해주지 않아 불만이 있던 터였는데, 뒤늦게 얻은 막내에게는 자신에게 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 마음이 상한 상태였다. 그렇게 인정받고자 노력했는데, 얻게 되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된 후부터 첫째는 일을 하지 않았다. 방앗간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면 굳이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매일 쿵더쿵 쿵더쿵 찧는 방아가 너무 단조로워 견딜 수 없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봤다. 성인이 되었지만 방앗간의 일 말고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놀고먹는 것 같았지만,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요지경처럼 세상을 보여줬다. 이야기에 심취하기도 하고, 먹고사는 기술이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더이상 방앗간은 세상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첫째는 이제 방앗간 바깥의 삶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니 학문에 관심이 생겼지만, 좀 더 실질적인 세상에 관심을 두던 차에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술집을 드나들었다. 그 곳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단아한 모습으로 첫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알고보면 남자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첫째가 꽤 잘사는 방앗간의 아들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그에게 은근히 방앗간의 소유주가 될 것을 종용했다. 첫째는 방앗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방앗간을 소유한 자신에게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방앗간이 세상의 중심이 되길 바랬다. 그는 방앗간을 소유하고 싶었지만, 계략을 연구할 만큼 못된 사람은 아니었기에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첫째를 엄하게 다스리며 방앗간의 명맥을 잇고자 긴장을 늦추지 않았는데, 첫째가 일을 놔버리자 당황했다. 더구나, 최근들어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되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가 항상 옆에서 일을 도우니 급한 마음에 막내에게 모든 것을 전수하고 물려주려고 했다. 매일 방아를 움직여야만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고단한 삶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간 쌓아온 이력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고, 자식들을 부양하려면 멈출 수 없었다. 그런 고단함을 일깨워 주고자 첫째를 엄히 다스렸지만, 엄하기만 하면 엇나가버린다는 걸 첫째를 통해 깨달았다. 하지만, 첫째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느꼈고, 모든 관심은 막내에게 갈 수 밖에 없었다. 

막내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방앗간에서 일하며 사는 모습이 더할나위없이 행복했고, 그 이상의 삶을 생각해 볼 이유조차 느끼지 못했다. 여유로운 시간에 낙이라고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이런저러하게 생각했던 이야기를 마냥 자신을 응시하는 고양이에게 털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말 못하는 고양이가 옆에 있어 외롭지 않았다. 나이차이가 많은 형들에게 다가갈 자신은 없었다. 그들은 막내를 어리다고 무시했고, 막내는 무시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한참 위인 형들을 제치고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왕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왕이 지날 때에는 감히 고개를 들어 응시할 수 없기에 원래는 볼 수 없었지만, 왕의 마차는 어떻게 생겼는지, 그 안엔 누가 타고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 몰래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놀랍게도 마차 안에는 공주가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 날 저녁, 그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공주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둘째는 권위적인 첫째와 총애를 받는 막내 사이에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방앗간은 실력있고 부지런한 아버지 덕에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 수 있어, 둘째는 이정도만 유지하고 살아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그에게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세상에는 마음만 먹으면 놀 수 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그는 주로 그의 패거리들과 함께 어울렸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변을 거니는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패거리들끼리 별 것 없는 농담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즐겼다. 집에서 받았던 억눌림을 패거리 안에서 풀었다. 그는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인정받고 싶었다. 하릴없이 흘러가는 패거리와의 생활 내에서 그들의 습성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급기야 그들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들보다 위에 있으려면 그들보다 뛰어난 재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방앗간의 삶 외에는 알지 못했던 그는 방앗간에서 재산이 될만한 걸 찾기 시작했다. 방앗간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방앗간 그 자체가 아닌 그 주변에서 자신이 뭘 소유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방앗간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보통 수레에 실어 이곳저곳으로 이동해 제공해야만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생산이 아닌 유통을 가져가야겠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후, 아버지가 죽었다. 첫째는 모든 것을 막내에게 상속하는 유언장을 읽고 격분해 그 사실을 술집에서 만난 그녀에게 토로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솔깃하게 듣고 그에게 넌지시 은밀한 방법을 권했다. 첫째는 이내 흥분을 가라 앉히고 지금이야말로 방앗간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그는 유언장을 본인만 먼저 읽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는 그녀와 모의하여 방앗간을 첫째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유언장을 고치고 그 내용을 형제들에게 알렸다. 둘째는 아버지가 죽은 슬픔에 취할 겨를도 없이 첫째가 모든 걸 가져가면 자신이 가질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불안때문에 형에게 당나귀와 수레만은 자신에게 달라고 청했다. 첫째는 둘째에게 조금도 베풀지 않는 한심한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를 허락했다. 하지만, 막내는 내내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결국 꼴보기 싫은 막내를 결국 내쫒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유언장을 읽고는 격분한 마음에 저지르고 만 것이다. 둘째는 막내가 불쌍했지만, 막내에게 자신의 몫을 나눠줘야 한다는 불안에 형의 행동을 지켜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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