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not over until you win

[소설] 날마다 만우절 : 구멍난 인생을 위로받아. 본문

느리게 읽고 남기기

[소설] 날마다 만우절 : 구멍난 인생을 위로받아.

캬옹몽몽이 2022. 8. 19. 15:37

완숙하고 예리한 시선을 바탕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윤성희 작가의 여섯번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

책을 소개하는 문구를 가져왔다.

나의 배움이 짧은지 이 소설이 삶의 긍정을 보여주는 글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별게 아닌 소재를 맛깔나게 버무려 단숨에 읽게 만드는 작가의 글재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요즘 내 고민은 '별 것도 없는 평범한 내 일상을 글로 쓸 수 있을까'인데, 윤성희 작가는 그 평범함 속에서 소재를 뽑아내고 글로 완성하여 "자. 이렇게 쓰는거야" 라며 내게 해답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모두 크던 작던 우리만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그건 오직 나와 관련된 이야기라 흥미를 불러 일으킬수도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신기하게도 여러 공통분모를 지닌 감정의 조각들이 드러난다. 흔히 공감이라 부르는 그것. 읽으면서 문득문득 생각난다. 소설에 나오는 그곳에 살지 않았고 그런 경험도 없지만 조금이나마 비슷한 경험을 토대로 나를 투영해본다. 그리곤 소설 속으로 깊게 빨려들어가 그 공간 안에 함께 머물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 몰입을 줄 수 있는 글이 어디 흔한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라는 문구는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을 보여주는 글인가 하며 책을 다시 살펴본다. 단편 ‘남은 기억’에서 영순은 암에 걸렸고 복자는 아들 내외를 잃었다. 영순은 복자에게 남편의 마을버스 회사를 망하게 한 총무과장과 남편의 내연녀가 함께 잘나가는 국수집을 하는데 거길 가서 욕이나 한바탕 퍼붓게 같이 가 달라고 한다. 그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그와 파생하여 둘이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온 인생을 말한다. 쉽지만은 않았을, 어쩌면 절망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흘러가듯 일상을 살아낸다. 아무렇지 않게. 단편 ‘날마다 만우절’에서는 3년전 크게 싸우고 연락도 없던 고모가 어느날부터 아빠에게 먹을 걸 보내고 급기야 꽃까지 보내자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가족이 모두 고모네로 향한다. 고모는 거짓말이었다며 그간 행동에 대해 소명했다. 하지만 왠지 그 말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가족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속 '나'는 남자에게 배신을 당했고, 동생은 큰 교통사고를 당했었고, 고모는 남편이 바람을 펴 이혼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수다 떨 듯 나오는데 모두 담담한 톤으로 말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지나면 그냥 지나버린 일이다.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지나면 그저 추억일 뿐이다.

당신의 고통보다 더 힘든 일을 당한 이들이 담담히 살아내는 걸 한번 봐. 그러니. 너도 살아낼 수 있어. 해봐.

하는 것 같다.

최근 개그우먼 이경실이 만드는 유튜브채널 '호걸언니'에 정선희가 나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재밌게 나누는데, 내용이 가볍지가 않다. 이경실도, 정선희도 커다란 풍파를 겪었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꿋꿋이 살아냈고, 그걸 이제는 재밌는 소재로 사용하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그들도 이야기 중간중간 이렇게 말한다. 

살아내는거야. 그냥 살아내면 다 지나가.

서로 다른 플랫폼으로, 글로 전하고 말로 전하지만, 전달하는 톤과 분위기는 사뭇 비슷했다. 삶은 힘들다. 여전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살아낸다면 그걸로 되는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