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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종이 동물원 : 짧은 글에 모든 서사가 담겨졌다.

캬옹몽몽이 2022. 10. 28. 12:49

#. 종이 동물원

짧은 단편안에 모든 서사가 담겨있는, 너무나 훌륭하고 슬픈 이야기. 

엄마는 벙어리가 아니었다. 단지 영어를 잘 못할 뿐이었다. 아들은 그런 엄마가 싫었다.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릴 적 가둬버렸던 종이 호랑이가 다시 그를 간지럽혔다. '으르라앙' 하면서.

호랑이는 엄마가 쓴 편지로 만들어졌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쓴 한자를 읽을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편지에는 지금껏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엄마가 아들을 만나기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아들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리고 아들이 중국어를 하지 않으려 하고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하자 얼마나 슬펐는지를. 

이 이야기를 아우르는 부분은,

"내가 사랑이라고 말할 때, 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愛]'라고 말하면,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작가 켄 리우는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며 약간의 환상을 섞어 짧은 소설을 완성했다. 중국에서 태어나 11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작가에게 이 이야기는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 철저히 미국인이 되어야 하지만, 절대 미국인이 될 수 없는 심정, 언어를 배우지 못한 채 미국에서 살게 된 엄마 등은 그의 어린시절을 그대로 내보인 것이리라. 작가는 미국에 살며 중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지만, 자신의 뿌리는 중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는 듯 했다.  

성인이 되어 다른 나라에 정착해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며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걸 어린 자식에게 이해받기란 더 쉽지 않다. 작가는 그 갈등을 착안해 글을 쓰며, 그 안에 동양적 환상을 심었다. 외국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터라 생소하지만, 서양적 요소를 갖춘 소설에서 동양적 향기를 맡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또한, 이 짧은 단편 안에서, 마치 영화를 보듯 흘러가는 유려함으로 인해, 한사람의 인생을 살아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함축적으로 모든 걸 다 말하지 않아도 공감하게 하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그러니 유명한 상을 모두 휩쓸었겠지.

#. 천생연분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사고의 주도권까지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소름끼치는 단편 스릴러.

내 일상을 효율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인공지능 서비스 '틸리'는 무엇을 고민할 때면 이를 알아채고 제안해준다. '틸리'가 내 선호도를 모두 알고 있으니 때마다 좋은 제안을 해줘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아 편안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틸리'가 스무디를 제안했다. 할인쿠폰도 있다면서. 그걸 무턱대고 믿어야 할까. '틸리'를 운영하는 회사에 스무디를 만드는 광고주가 의뢰를 한다. 광고효과를 통해 스무디를 더 많이 팔기 위한 목적으로. 그래서 프로그램인 '틸리'는 사용자에게 제안을 하는 것이다. 스무디를 먹으라고. 취향을 존중하는 것인가, 아니면 광고주를 대신한 유혹의 속삭임일까. 어쩌면 가스라이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이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엔 몸이 힘들지 않도록 도와주는 보조수단에서 사람을 대체해버리는 기계가 나왔다. 사람들은 더이상 힘든 일을 하지 않고 편한 일만을 찾게 된다. 이제 더 나아가 기술은 사람의 생각을 대신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생각과 판단과 선택은 머리를 아프게 하니 이를 대신해주는 AI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우리를 지배하는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틸리'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람의 생각을 대체하는 정도까지 이르기 위한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조만간 탄생하지 않을까.

아이폰은 세상을 혁신으로 이끌었다. 전화기 안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집어 넣었다. 작지만 뛰어난 컴퓨터를 들고 다니기에 데스크탑PC, 심지어 노트북의 사용량도 줄어들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으며, MP3 플레이어는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이 전화기의 노예가 되어 한시라도 내려놓지 못하게 되고, 의존하게 되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모르는 무언가가 나왔을 때 기억을 통해 떠올리려 하지 않고 검색부터 한다. 머리를 쓰지 않으니 사고, 생각은 점점 퇴화되어 간다. 혹자는 어떤 연구결과에 따라,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능력은 도태되지만(기억할 필요가 없으니까), 대신해서 다른 능력이 진화되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적응을 잘 하는 동물이니 이런 변화에 맞춰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긍정적인 이야기였다. 

데이트를 위해서도 '틸리'는 꼭 필요하다. 상대방이 호감을 가질만한 소스를 제공받고 어색해지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제안받는 등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 4 에피소드 '시스템의 연인(Hang the DJ)'은 이 내용의 일부를 착안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만나 시스템을 확인하면,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알려준다. 누군가와는 20시간, 누군가와는 1년.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고 싶은 이들은 시스템이 알려주는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끌렸던 둘은 시스템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감정은 그렇지 않은데 왜! 

#. 즐거운 사냥을 하길 (Good Hunting)

대영제국에게 패배한 중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존의 신비와 미래의 신비가 공존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여우가 사람이 되는 시절, 중국과의 전쟁에서 숭리한 대영제국은 수탈을 목적으로 철도를 놓았다. 오로지 거리의 효율만을 고려한 철도는 중국인들의 터전을 밀어내 땅의 기운과 그에 따른 거주자들의 운을 사라지게 했다. 살아남기 위한 이들은 홍콩으로 이주하고, 계속된 기계의 눈부신 발전은 급기야 사람이 발산하는 욕망의 분출구를 왜곡시키기에 이르렀고, 금속의 미려한 움직임에 흥분하는 이들이 생겨나 사람의 몸을 금속으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몸이 금속으로 대체되어버린 염을 량이 보는 장면을 읽자 불현듯 이미지가 떠올랐다. 난 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이미지가 떠오를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로봇' 시즌 1 중 10화 '굿 헌팅'은 바로 이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내용이었고, 작년 언젠가 봤던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 원작을 읽게 되니 그렇게 이미지가 떠올랐다. 

흥미로운 건, 이 애니메이션을 국내 스튜디오인 레드독컬쳐하우스에서 제작했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미래사회의 풍경과 염이 기계의 몸을 가지고 사람에서 여우로 변하는 과정이 잘 담겨있는데, 제작할 작품의 선정은 넷플릭스에서 했고, 레드독 측에서는 그전까지 원작소설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고 한다. 

https://reddogch.com/%EB%B6%84%EB%A5%98%EB%90%98%EC%A7%80-%EC%95%8A%EC%9D%8C/news_lli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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