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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읽기] 박씨부인전 : 억압의 한풀이

캬옹몽몽이 2022. 11. 28. 15:24

우리학교 8학년이 한해를 마무리하며 연극으로 ‘박씨부인전’을 공연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선 후기에 창작소설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책 ‘박씨부인전’을 읽어볼 수 있었다.

홍길동전, 심청전 등은 너무도 유명하여 어릴 때부터 잘 아는 이야기였지만, 박씨부인전은 꽤 생소했다. 하지만, 박씨부인이 펼치는 기묘한 도술과 신묘한 이야기들은 홍길동전 못지 않은 박진감 넘치는 묘사로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우리고전 4, 박씨 부인전, 창비, 김종광 글, 홍선주 그림

#. 이야기

조선시대 인조 때 재상 이득춘은 우연한 기회로 박처사를 만나 그가 신선과도 같은 사람임을 일찍이 알고 가까이했다. 박처사는 이득춘에게 자신의 여식을 며느리로 받아달라 청했고, 이득춘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박처사의 여식 박씨는 얼굴이 흉하고 못생겨 남편이 된 이시백은 그녀를 멀리 했다. 비록 얼굴은 흉하나 가진 재주가 많아 이득춘의 조복을 금새 지어내 임금의 칭찬을 받고, 삼백냥에 사들인 망아지를 종마로 만들어 삼만냥에 파는 능력을 보여준다. 하루는 박처사가 딸에게 이르길, “너의 좋지 않은 운수가 이제 다하였으니, 허물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이내 박씨부인은 선녀와도 같은 미인이 되었다. 못생겨서 부인을 멀리했던 이시백은 부끄러움을 알고 용서를 빌어 금술좋은 부부가 되어 여러 자식을 낳기에 이르렀다.

세월이 흘러 이시백은 공적을 쌓아 우의정에 올랐고, 당시 위엄을 떨치는 군사령관인 도원수에는 임경업 장군이 있어 의주를 지키고 있었다. 청나라는 틈만나면 조선을 침략하려 했지만, 임경업 장군이 두려워 쉽사리 기회를 찾지 못했다. 청나라의 왕비는 앉아서 천 리를, 서서는 만 리를 볼 수 있는 신통력이 있는데, 조선에 자신보다 뛰어난 신통력을 지닌 신인이 있으니 그 신인을 없애면 임경업 장군도 쉽게 물리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 신인이 남자일 것이라 생각한 이들은 기홍대라는 여자 자객을 보내 미인계로 유인해 이시백의 집에서 신인을 죽이라 일렀다. 하지만, 박씨부인이 이를 알고 저지했다. 임경업이 북방을 지키고 있으니 청나라 왕은 용골대와 용율대 형제를 대장으로 삼아 바다를 건너 한양을 기습하라 했다. 박씨부인이 이를 알고 임경업 장군을 불러들이라 간청했지만, 영의정 김자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결국 청나라의 습격에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했고, 왕대비와 세자, 대군은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하지만, 강화도에 피신한 이들은 모두 붙잡혔고, 임금도 항복을 하고 말았다. 항복을 받고 한양으로 돌아온 용골대는 동생 용율대가 박씨부인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시백의 집을 습격했지만, 박씨부인의 신비로운 조화로 오랑캐들은 모두 무너지고 용골대도 더이상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임금에게 항복까지 받아낸 청나라 군대였지만, 다시는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며 모두 돌아갔다. 

박씨부인의 활약으로 오랑캐들을 무찌르게 되자, 임금은 박씨부인에게 '충렬'이라는 칭호를 내려, 박씨부인은 충렬부인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이후 아흔아홉살까지 즐거움을 나누며 살았다고 한다. 

#. 여성들의 활약

조선 후기에 창작되어 한글로 필사되어 퍼지다가 일제 시대에 활자로 인쇄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된 '박씨부인전'은 지은이와 정확한 창작 연대를 알 수 없지만, 17세기말부터 18세기 초로 추정된다고 한다. 

병자호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이야기가 재밌는 점은 남자들이 아닌 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는 것이다. 남편인 이시백은 실존하는 인물로 영의정까지 지낸 능력있는 사람이나, 여기선 박씨부인의 말을 전하는 사람일 뿐이다. 중요한 활약은 박씨부인과 몸종 계화가 보여준다. 오랑캐 용율대는 몸종 계화의 칼에 죽었고, 용골대가 이끄는 군사들은 모두 박씨부인의 신묘한 도술로 쓰러졌다. 실제한 인물들인 남자들은 (임경업 장군을 제외하고) 모두 무능력해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나, 여성들은 신에 가까운 능력에 용기와 지혜를 선보인다. 

여성들이 자유롭지 않은 시절, 이렇게 소설로 풀어낸 한풀이가 큰 위안을 주어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시대에 이렇게 자유로운 상상력이 펼쳐질 수 있다는게 놀랍다.

이제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고, 영화에서도 마블 세계관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들로 교체되어 가고 있다. 여성 히어로를 원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이야기도 영화화가 된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OTT 시대로 컨텐츠가 범람해 다양한 소재가 필요한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런 고전들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다. 최근 트렌드는 웹소설이 웹툰화가 되고 이게 다시 드라마가 되는 형태다. 사람들에게 주목받은, 검증된 이야기 위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에도 일명 '회귀물'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만 봐도 죽은 이가 다시 다른 사람이 되어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가. 드라마 소재로는 어렵더라도 '신과 함께'와 같은 SF 기술력이라면 이 '박씨부인전'을 영화화하는데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영화화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재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어 적어본다. 

#. 오랑캐를 무찌르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그 당시의 치욕스런 현실이 어떤지 알 수 있다. 한 나라의 왕이 신하의 옷을 입고, 머리를 조아려 오랑캐의 장수에게 삼배를 올리는 등 신하의 예를 보여야 했다. 굴욕, 굴복. 병자호란, 오랑캐의 침입으로 나라가 무너지는데에는 47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랑캐는 이 승전으로 조선인 50만명을 끌고 갔다. 당시 양반들이 우습게 여기던 오랑캐에게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큰 치욕이었겠는가. 더구나, 평민들의 피해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했던 고통스런 선택이었다. 

이런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 속에서나마 오랑캐에게 복수하고 싶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잘 녹아들어 통쾌함을 가득 선사해준다. 소설에서는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가득하다. 

"그동안 우리 조선은 너희 나라에 많은 도움을 베풀었다. 그런데 너희 왕은 은혜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우리 나라를 범하려 하는구나........내가 이 칼로 너를 먼저 베어 분함을 풀리라."

그 원통함이 어떻게 풀리겠는가. 하지만,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여져 널리 퍼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받은 고통을 이렇게 소설로나마 통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글이란 여러모로 유용하구나. 

아마도 이 글의 작가는 여성들이 아닐까. 한사람이 아닌 여러사람. 병자호란 당시의 정세를 잘 읽어냈던 사람. 지금처럼 정보가 열려있지 않으니 제한된 정보가 배경이 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당시의 정황이 잘 녹여져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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