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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오후에는 맥주 한잔 본문
‘저는 술을 잘 못 먹습니다.’ 라는 말을 이제는 하기 어려워졌다. 술을 먹으면 몸이 힘들어지는 그 기분이 싫었지만, 술을 좋아하는 아내와 가끔 홀짝거리다 보니 그 약간의 알딸딸함이 주는 기운이 좋아졌다.
술을 좋아하는 아내는 요즘 몸이 좋지 않아 단식에 들어갔고, 난 맥주 한잔이 먹고 싶어졌다. 술은 커녕 음식도 입에 대지 못하는 상황에 옆에서 홀짝거리는건 도발일 뿐이라 궁리하다가 일요일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에 가서 어린이 미사를 마치고 집 앞 꼬치집에서 아이들에게는 닭꼬치 하나씩을 물려주고 난 맥주를 한잔 먹고 있다.
나온 배를 보면 다이어트와 운동이 필수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이래저래 블록쌓듯 쌓인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서는 맥주 한잔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비록 비가 내리고 있지만, 손님 없는 집앞 꼬치집에서 닭꼬치를 먹는 아이들은 둘이서 행복해 하고, 나는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약간이라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상대적일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치열함으로 느껴지는 주중의 일상을 겪고 나면 주말은 마음껏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곤 한다. 항상 성장하고 발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다보면 꼭 그래야만 살 수 있는건가 하는 반발심이 생기다가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벌이를 생각해보면 도태되면 밀려날 수 밖에 없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음에 다시 고개를 숙일 수 밖엔 없다. 30분도 안되는 이 짧은 여유가 모든 스트레스를 희석해줄 수 있진 않겠지만, 이 정도의 여유라도 부릴 수 있는 지금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된다.
추적거리는 비를 힐끔거리다 끄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