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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 이제야 궁금해졌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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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 이제야 궁금해졌다.

캬옹몽몽이 2022. 3. 7. 18:27

오래된 책들을 진즉에 정리했지만, 버리거나 팔지 못한 채 한켠에 층층히 쌓아두고만 있었다. 이제는 정리해야지 하며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 일부일처제를 향한 삐딱한 시선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 모순적인 문장이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책을 열어볼 만큼 궁금하진 않았다. 2006년에 나온 책이니 그 때 사둔 책이라면 무려 16년을 책장 한켠만 차지하다가 정리하기 전 마지막 궁금증이 손을 뻗치게 만들었다. 나왔을 당시 구매했다면 그 때 읽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걸 보면 헌책방에서 언젠가 자연스레 산 것 같다.   

소설의 주제는 한국의 일부일처제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이다. 

축구경기 관람을 좋아하는 덕훈은 지단이 속해있다는 이유로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했고, 대화를 통해 알게된 인아가 FC 바르셀로나를 좋아한다는 점이 그를 흔들었다. 축구를 기점으로 알게된 그녀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었다. 한국적인 관점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딱 한가지를 제외하고.

인아는 일부일처제가 흔들림 없는 관념으로 자리 잡은 한국사회 안에서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서로 사랑을 하지만, 사랑은 한사람만이 아닌 여러 사람과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지녔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여긴 덕훈은 끈질긴 구애와 그녀의 생각을 모두 따르겠다는 다짐 속에 결혼에 성공한다.

꿈같은 신혼생활을 몇개월 보낸 뒤, 인아는 일을 위해 경주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또다른 사랑을 만나게 된다. 

덕훈은 인아가 다른 남자 또한 사랑하는 것 외엔 별다른 흠을 잡을 수 없어 화를 내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애써 이혼을 통해 이 관계를 단절하려 했으나, 그러기엔 덕훈은 인아를 사랑했다. 사랑은 상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인아가 원하는 대로 끌려간다.

소설은 막장 드라마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주변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화자가 되어 있는 주인공이 상황에 따른 심경의 변화만을 알려줄 뿐이다. 그래서, 이 상황적 측면에서의 스릴러 같은 요소는 발생하지 않는다. 인아는 가족으로 얽힌 모든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한다. 본인의 생각을 주입하려 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어필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랑은 그런 것이라며 기다리고 인내하고 설득하여 본인이 원하는 상황으로 이끌어간다. 

소설에서 덕훈은 모든 상황을 축구와 함께 풀어간다. 2006년 소설 답게, 2002년 월드컵 한국의 4강 신화를 활용했고, 요소요소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축구와 관계된 에피소드와 함께 풀어갔다. 

예를 들면,

1995-96 시즌, FC 바르셀로나는 루이스 피구를 영입했고, 그는 다섯 시즌 동안 일곱 개의 우승컵을 팀에 안겨주었다. 유로 2000이 끝나고, 피구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이후 FC 바르셀로나는 세 시즌동안 우승컵을 한번도 얻지 못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프리메라리가 2연패, 챔피언스 리스도 우승하는 성적을 이뤘다. 그런 피구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나만의 방식을 창조하고 싶다."

2억 명이 넘는 이들이 축구를 하고 수천만 명이 축구 선수로 뛰지만 자기만의 방식을 창조하고 자신만의 창조적인 축구를 하는 이들은 손에 꼽힌다.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고작 수십 명의 유명하고도 위대한 선수들이 그들이다.

5천만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창조하려는 여자가 있으니, 그것도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한 쪽으로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려 드는 여자가 있으니 바로 내 마누라다.

그렇다. 작가는 덕훈을 통해 일부일처제를 향한 삐딱한 시선을 던지면서 동시에 축구에 관한 덕후적인 기질을 펼쳐냈다. 그가 다 기억하고 쓴 건 아니었다. 책의 맨 뒷편에는 작가의 참고 자료를 통해 방대한 지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준다. 

다양한 관계가 얽히지 않아 가능한 구조

이건 소설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그만큼 박현욱 작가의 글은 가독성이 뛰어나다. 가벼웠던 상황은 점점 무거워진다. 둘만 있던 상황에서 세명이 되고 급기야 아이도 생긴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과 얽히게 될 시점. 그들은 뉴질랜드로 떠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소설이기에 가능하지만, 정말 가능했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덕훈의 바람둥이 친구는 알지만 그가 간섭하기엔 그의 상황도 녹록치 않았다.) 각자의 부모, 형제들도 몰랐고, 친구도 거의 없고, 직장동료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세사람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능했다. 주변인의 조언이나 간섭은 그 어느 곳에서도 끼여들지 않는다. 굳건했던 생각과 믿음도 주변의 시선이나 간섭으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 있는데, 그런 요소를 배제했으니 그들만의 생각과 심경변화만으로 상황이 흘러갈 뿐이었다. 

그래서, 덕훈은 이 상황이 고깝고, 짜증나고, 열받고, 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점점 그럴 수 있다는, 너도 그래도 된다는 인아의 태도에 조금씩 물들어간다. 

 박현욱 작가는...

박현욱 작가는 2001년 '동정없는 세상'으로 등단한 이후 '새는', '아내가 결혼했다.', '그 여자의 침대' 등을 발표했다. 작가는 강연 등의 활동은 잘 없는지, 2008년 이후 작품이 보이지 않고, 인터뷰 등의 기사도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검색한 내용 하에서는 그렇다.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로 만들어지다.

덕훈 역은 뭘 얘기해도 다 들어줄 것만 같은 김주혁이, 인아 역은 뭐든 설득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손예진이 맡았다. 흥행여부를 떠나 캐스팅은 딱 들어맞는 찰떡같다.

200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약 170만명이 관람했다. 이런 발칙한 소재는 영화화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른 덕훈의 심경변화만 있을 뿐 주변인들과의 심각한 갈등구조는 발생하지 않기에 영화는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는데, 결국 한번에 폭발되는 상황을 위해 재경과 인아의 돌잔치에 친자확인서를 던지며 깽판을 치고 떠나는, 소설과는 다른 양상으로 극이 흘러간다. 

작가는 삶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소한 개념인 모노가미, 폴리기니, 폴리안드리를 소개하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모노가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일부일처제, 폴리기니는 일부다처제, 폴리안드리는 일처다부제를 말한다. 폴리안드리는 티벳이나, 인도,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는데, 이는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티벳에서는 재산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형제가 아내를 공동으로 소유한다. 인도의 토다 족은 식량 부족으로 여아 살해가 많아 성비가 맞지 않아 필연적으로 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부일처제가 절대 유일의 법칙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의 주제를 나에게 적용한다면 혼란스럽지만 한가지는 배웠다. 정답은 없다. 정해진 것은 없다. 꼭 이래야만 해 라는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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