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not over until you win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여전히 달달하네 본문

영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여전히 달달하네

캬옹몽몽이 2022. 3. 19. 09:50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1993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시애틀을 말하면 무조건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 하나의 문장이자 상징이 되어 버렸다. 2000년 초반에 기회가 생겨 시애틀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이후 시애틀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는 말을 꺼내면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대다수의 질문 중의 하나는, "잠 못드는 밤을 많이 보냈나요?" 영화 제목을 이용한, 질문인지 개그인지 모를 그런 말이다. 잠이 안들 수 있겠는가. 졸리면 자야지. 그리고 시애틀은 굉장히 조용한 도시라서 밤엔 너무나도 조용했다. 잘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데 왜 잠이 오지 않겠는가.
시애틀에선 잠들기 어려운가요?
시애틀에 처음 갔을 무렵 학교가 아직 개강 전이라 기숙사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밥은 먹어야겠는데 식당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무작정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그는 흑인이었는데, 마침 나도 저녁 먹으러 가는 참이라 같이 갈래? 라고 하여 같이 저녁을 먹었다. 짧은 영어로 흑인이 하는 말을 겨우겨우 알아들어가며 밥을 먹으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만큼 정신을 못차렸다. 밥을 먹고 학교로 돌아와 벤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 한국에서라면 밤 12시에도 가겠지만, 미국은 밤에 돌아다니면 안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시내 나가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여기도 사람사는 곳인데, 괜찮다고 했다.
그 당시에 개봉했던 '코디 뱅크스'를 봤다. 거의 애들영화에 가까웠는데 아마도 내 짧은 영어를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영화였기에 영상을 보며 맥락은 이해했지만, 대사는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학교로 돌아와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는 개강을 했고, 캠퍼스에는 학생으로 넘쳐났다. 수업을 이동하는 길에 그 친절했던 흑인을 마주쳐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는 그 인사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당황스러웠다. 어느 포인트에서 무시당한건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 기숙사의 같은 공간을 쓰는 미국 친구들에게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시애틀은 항상 비가 오나요?
항상 듣는 질문이었다. 약 20년전 1년간의 생활이었지만, 시애틀은 비가 매일 오는 건 아니었다. 10월부터 3월까지 집중적으로 오고, 그 외에는 날씨가 참 좋았다. 비가 와도 매일 폭우가 쏟아지는 건 아니었다. 가랑비가 내리거나 하는 정도라, 사람들은 대부분 우산을 쓰기보다는 비에 젖지 않는 기능성 등산복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고 다녔다. 조금씩 내리는 비에 우산을 쓰고 다니면 저 사람은 외지인이구나. 이곳에 살지 않는 사람이구나 정도로 여겨질 수 있었다.
홍수가 날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건 아니기에 비가 오면 참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등산복이 인기가 좋았다. 우리나라는 등산객 수요가 늘면서 노스페이스가 급격하게 증가했지만, 시애틀이 좀 더 트렌드가 빨랐던 것 같다. 노스페이스는 아니지만, 당시에 사서 입고 다녔던 기능성 점퍼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당시의 추억에 미련이 남아 버릴 수가 없었다.
겨울에도 그리 추운 편은 아니기에 비가 왔지 눈은 오지 않았다. 시애틀을 떠나고 몇년 뒤인가 몇십년만에 눈이 왔다며 지인들이 즐거워 하는 사진이 올라왔던 기억이 있다. 버스타고 2시간만 가면 캐나다 밴쿠버에 갈 수 있고, 스키타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2시간 차이가 참 컸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 비를 즐기는 시간은 꽤 낭만적이었다.
영화 얘기를 하려 했는데, 추억 여행으로 빠져 버렸네.
시카고에서 행복한 삶을 살던 샘(톰 행크스 분)는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추억이 많은 이 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는 아들 조나(로스 멜링거 분)과 함께 시애틀로 이주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날, 조나는 심리상담사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전화해 사연을 말하고 샘도 통화하게 된다.
결혼할 남자와 결혼소식을 전하러 친정과 시댁을 오가던 애니는 라디오를 듣다 이 방송을 듣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 사연에 빠져든다. 그녀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이 사연에 빠져든다. 그녀는 운명같은 사랑을 꿈꾸는데, 일면식도 없는 그 남자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취재를 핑계로 그를 만나러 갔던 그녀는 우연히 그와 인사를 하게 된다. 샘은 오히려 그녀를 보고 한눈에 운명같은 사랑을 느낀다. 이 둘을 이어준건 다름아닌 조나였다. 그녀에게 받은 편지만으로 이 여자가 나의 엄마가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는 용감하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홀로 향했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지만, 운명같은 사랑을 믿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 결국 두 사람이 만나며 영화는 끝난다.

흔히 우리는 평소에 흔치 않은 사연을 보면 "영화같다"곤 한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말그대로 영화같다. 현실에서는 다분히 일어날 수 없는 우연과 확신 때문이다. 특히나 살면서 느끼는 건 그 절대적인 확신이 정말 가능할까 싶기 때문이다. 편지 한통으로 조나는 애니가 아빠의 짝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샘은 만나기 전까지 이를 믿지 않는다.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들의 전화 한통으로 전국에서 수많은 편지가 오는데, 그 중의 하나를 얼마나 관심있게 읽었겠는가.

몰랐던 장면들
샘의 여동생 수지로 나오는 리타 윌슨은 사실 톰 행크스의 부인이다. 이 영화를 찍을 때 이미 이 부부는 결혼한지 5년이 된 시점이었다. 이혼과 재혼이 빈번한 미국, 특히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서 이 둘은 아직도(초혼은 아니지만)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