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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캐슬 : 권위는 힘만으로 얻을 수 없다.

캬옹몽몽이 2022. 6. 9. 00:25

설거지하며 영화보기

요즘은 넷플릭스로 영화 한편 틀어놓고 설거지를 한다. 보는 것보다는 들으면서 해야 하기에 외국영화보다는 한국영화를 본다. 하지만, 오늘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잘생긴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영화 '라스트 캐슬'을 봤다.

#. 남자들의 자존심 싸움

이 영화는 군인의 상징과도 같았던 어윈 장군(로버트 레드포드 역)이 총사령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수행한 임무에서 8명의 목숨을 잃게 만든 책임으로 군 교도소에 오게 되고, 죄수들의 마음을 얻는 동시에 그들을 결집시켜, 부당한 일을 자행하는 소장 윈터 대령(제임스 갠돌피니 역)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조금 좁게 바라보면 어윈 장군은 아무 생각없이 윈터 대령의 가장 취약한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벌어진 싸움으로, 그 자존심 대결이 극에 달해 결국 감옥 내에서 교도관과 죄수들의 전쟁이 되어버린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윈터 대령은 관리자로서, 군사학적으로 죄수들을 통제하는데 일가견이 있고, 본인은 그 위에 군림하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어윈 장군의 등장으로 본인의 권위에 흠집이 갔고, 게다가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없는 그의 치부를 함부로 건드려 버렸다. 자존심이 상한 윈터 대령은 어윈 장군 앞에서 어떻게든 그의 권위를 뽐내고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윈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를 받아 서로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만큼 최악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만약 어윈이 심리적으로 사람을 다루는데 능통한 사람이었더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를 이용해 감옥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을 잘 다루고 정치력이 뛰어났다면 애초에 감옥에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어윈 장군을 묘사하길, 포로가 되었을 당시 동료 병사들과 함께 나갈 수 없다는 이유로 홀로 석방되길 거부하며 그들과 2년여의 시간을 더 보냈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동료애를 가장 큰 미덕으로 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군인으로서, 군인의 자존심을 바탕으로 살아온 사람이기에, 가정 내에서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고, 그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과 같았다. 군인으로, 전장에서 상황을 읽고 동료들과 함께 전투에 승리하는 순간만이 그를 있게 했다.

하물며, 그 찰나에 윈터 대령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잘 지낼 수 있었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어윈의 행동은 모두 윈터 대령의 기분을 거스르는 행동이었으니까. 

특별한 적의를 보이지 않았던 어윈에게 윈터 대령은 눈 앞에서 그들이 쌓아올린 벽을 무참히 밀어버리고, 이를 막아서던 아길라에게 고무탄환을 쏴 죽이기에 이르렀다. 어윈은 이 때부터 그가 소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결정했고, 그를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기로 결심했다. 어윈은 교도소의 통제단계를 확인한 후 각 죄수들에게 임무를 맡겨 최후의 싸움을 시작한다.

경례의 유래

어윈 장군은 자신에게 자꾸 어설픈 경례를 하는 아길라에게 경례의 유래를 설명해준다.

중세시대, 말을 탄 기사들을 서로에게 다가가 투구를 올리고 얼굴을 보였다.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난 적이 아니며, 난 두렵지 않다는 걸 보이는 것이다. 또한, 경례는 존경을 의미한다. 네 자신, 헌신, 국기에 대한  존경. 

온 몸을 철로 둘러놓아 누군지 알수도 없던 그 중세시대, 투구를 올리는 행위는 곧 인사이자, 공격의사가 없다는 표시였다. 군대를 가면 올바른 경례법을 배운다. 지나가다 경례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자세가 바로잡힐 때까지 경례연습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부대 밖으로 훈련나갔다가 지위가 높아보이는 1호차를 향해 경례를 하지 않으면 군기가 빠졌다고 영창에 가는 일도 있다. 그만큼 군대 내에서 경례를 중요한 사항 중 하나였다.

짬밥을 먹을수록, 군기가 점점 빠져 갈수록 이 융통성 없는 경례는 무엇을 위한건가 싶은 생각이 많았다.

행정반이든 어디든 어딘가에 들어갈 때에는, "충성! 이병 xxx,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들어가야 하고, 나올 때에는 상급자에게 경례를 하고 나와야 한다. 전시상황이 아닌 평시상태이니 그러겠다만, 매번 귀찮게 들어갈 때마다 그래야 하는건 너무 비실용적이었다. 짬 많이 먹으면 제 집 드나들 듯 그냥 들락날락 하기 일쑤지만 말이다. 

경례의 유래는 극도의 긴장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군기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알맞게 쓰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군대 다녀온지 20년이 넘었으니 요즘 군대는 어떤지 전혀 알 수 없다. 아직 그럴 것이라 생각되기는 하지만.

제임스 갠돌피니의 섬세한 연기

자존심 강하고 소심해보이는 교도소장을 보여주는 제임스 갠돌피니의 연기는 보면 볼수록 섬세하다. 순간적으로 스치듯이만 보여주는 그 새침한 얼굴은 계속 보면 왠지 귀여워 보일 지경이다. 할 말이 있어 불러놓고, 일부러 죄수들을 그대로 세워둔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간식을 먹고 자기 볼일을 다 본 후에 말을 꺼낸다. 난 너보다 위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그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비롯해, 어윈에게 자존심이 상한다는 인상을 서서히 드러내는 연기 또한 섬세하다. 드라마 소프라노스를 통해 연기를 증명했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의 연기는 빛난다. 

아쉬운 결말

마지막 어윈은 자신이 승리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윈터를 자극하며 성조기를 들고가다 총에 맞는다. 하지만 그는 기를 쓰고 성조기를 끌어올린다. 거꾸로 달릴 줄 알았던 성조기는 제대로 달려있고, 군인들은 모두 펄럭이는 성조기에 경례를 하며 영화가 끝난다. 미국이여 영원하라. 성조기가 짱이야. 이건 미국영화랍니다. 대놓고 칭송하는 듯한 모습은 꽤나 보기 싫었다. 영화를 찍은 시점은 휠씬 전이겠지만, 이 영화는 911 테러 이후에 개봉한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갈 수는 있겠다. 그 테러 또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권위에 대항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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