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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세계 : 이정재의 부활

캬옹몽몽이 2022. 10. 1. 08:14

2012년작, 범죄/액션/느와르, 2시간 14분

영화 개봉 이후 TV/케이블에 팔리자 이 영화는 쉴새없이 나왔다. 영화채널에선 밤 10시 이후에 단골손님으로 편성되었고, 이런 특집, 저런 특집을 빌미삼아 많이도 방영되었다. 나는 그덕에 이 영화를 정말 원없이 봤다. 틀면 나오는 이 영화가 지겹지 않았고,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졌다.

정청은 곧 황정민이었고, 황정민이 곧 정청이었다. 이중구를 연기한 박성웅은 간악함을 마구 펼친 탓에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해도 이 간악함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각인되어 버렸다. 최민식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 촌스럽지만 잔인한 연변 거지들도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다. 서로가 두뇌싸움하는 스릴러적 요소와 한판 거하게 벌이는 액션신, 마지막 모든 걸 정리해버리는 단호한 과정까지, 이 영화는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참으로 조화로웠다. 

#. 돋보이는 이정재의 품위

수많은 장면이 패러디 되었고, 많은 언급들이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다름아닌 이정재의 '연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세계' 이전까지 배우 이정재를 잘생기고 멋지다고만 생각했지, 연기를 잘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훈정 감독은 이 배우를 재탄생시켰다. 이정재의 노력도 당연히 함께 있었겠지만, 감독의 연출력 속에 묻어나온 그의 연기는 경이로웠다. 배우 최민식은 캐스팅 단계에서 이정재와 정우성을 두고 고민했다고 하는데,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특히, 정청에게 정체가 발각된 것이라 예상하여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볼 때 조금은 과장되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여러번 보면서 극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필요한 요소였다고 느꼈다. 

박훈정 감독은 이정재에게 이렇게 주문했다고 한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무간도의 양조위 같았으면 좋겠고, 후반으로 갈수록 대부의 알파치노 같으면 좋겠다."

이정재는 그걸 듣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며 웃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주문대로 제대로 연기했다. 정청의 죽음 전까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정청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선택을 한 후부터는 비장한 수장의 모습을 여실히 보였다.

정청의 죽음은 극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강력한 트리거가 되었고, 골드문 전체는 모두 이자성의 손에 접수되었다. 결국, 이자성은 왕이 될 자였지만 숨죽이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걸 증명했다. 꽉막힌 하수도관 뚫리듯 문제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나가는 과정은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줬다. 소화제 먹고 소화되는 느낌이랄까.

그는 정말 왕이 될 운명을 가진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신세계를 필두로, 영화 '관상'에선 "내가 왕이 될 상인가?"를 외치며 정말 왕이 되었고, 영화 '신과 함께'에서는 염라대왕이 되지 않았는가. 또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다른 모습이기는 했지만, 결국 모든 경쟁자를 이겨내고 '우승자'가 되었으니, 그는 정말 '왕'이 어울리는 배우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품위있는 이미지는 그간의 세월이 만들어준 선물이겠지만, 사람의 얼굴은 인생을 말해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지금껏 그런 품위를 갖출만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체화된 것이리라. 그는 보기와는 다르게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것에 관해 예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살면서 그 정도로 안힘들어 본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 힘들었던 것처럼 과거를 꺼내어 동정표를 유발하는 행위를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런 스토리는 있고, 그 강도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까." 세상에 보여지는 인터뷰니까 그랬을 수 있지만, 실제로 본인의 개인사는 잘 언급하지 않는 점을 보면 그는 어려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가진 단단한 사람일 것 같다. 

#. 무간도를 넘어, 한국적 느와르의 완성

사실 영화 '신세계'의 스토리라인은 홍콩의 유명 느와르 영화 '무간도'와 닮아있다. 영화 개봉 당시 무간도와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되자 박훈정 감독은 이렇게 답변했다. 

"사실 언더커버 영화는 홍콩에서나 다른 나라에서나 굉장히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간도가 최고의 '언더커버 영화'였기에 필연적으로 이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07/2013030700507.html

 

'신세계' 감독, "'무간도'와 비교? 당연한 것"

신세계 감독, 무간도와 비교 당연한 것

www.chosun.com

'무간도'는 경찰조직에 잠입한 조직원과 조폭조직에 잠입한 경찰이 동시에 나오며, 경찰에 잠입한 이가 조폭에 잠입한 이의 경찰기록을 지우면서 발생하는 비극이 주된 스토리라인이다. 하지만, '신세계'는 조폭조직에 잠입한 경찰만이 있을 뿐이며, 그가 정체성을 고민하며 방황하다 '선택'을 하게 되는 내용이기에 나는 이를 '변주'한 것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짜임새 있고, 지루하지 않은 구성은 한국적 느와르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존의 것들을 잊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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