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not over until you win

[느리게 읽고 남기기] 청춘의 독서 본문

느리게 읽고 남기기

[느리게 읽고 남기기] 청춘의 독서

캬옹몽몽이 2019. 2. 22. 07:51

어느날부터 유시민 작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근본적인 삶의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를 책 제목으로 하다니. 

집어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2013년 그가 그 책을 냈을 때, 그를 정치가가 아닌 작가로서 인지한 시점이었으리라. 

한 사람의 글을 연속으로 읽지 않으려는 생각에 외면하다 서점에서 ‘청춘의 독서’를 집어들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자마자 '청춘의 독서'를 집어든 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몇년이라는 공간은 존재했다. 다만, 유시민 작가의 궤적이 나에게 연속적인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책으로, 뉴스로, Podcast로, 예능으로, 지속적으로 접하고 있어왔기에 그랬다. 지금 남기고자 하는건 '청춘의 독서'에 대한 글이다. (심지어 이 책은 2009년에 나온 책이다.) 

'청춘의 독서' 2018년 특별판으로 다시 나왔다.

유시민 작가가 '청춘'이던 시절, 그 시절을 함께 하며, 삶에 깊고 뚜렷한 흔적을 남긴 책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총 14개의 챕터로 각 챕터당 한 권의 서평이 담겨있다. 러시아 소설부터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까지 범위가 넓다. 작가는 어려울 수 있는 논리나 논제에 대해 쉽게 풀어 얘기하고, 써내려가는 말 자체가 쉬운, 엄청난 재주를 가졌다. 덕분에 해당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다 몇 페이지 가지도 못해 나가떨어질 나 같은 이에게는 그나마라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소개된 책들 중 가장 집중하게 된 내용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하인리히 뵐의 작품이었다.

이 책은 1974년에 쓰여진 작품으로, 언론의 힘이 잘못 쓰인다면? 고의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 정보를 지속적으로 내보내 개인의 명예가 처참히 실추될 수 있다는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착실하고 평범한 카타리나 블룸은 아는 사람이 주최한 댄스파티에 참석했다. 그 곳에서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어 하룻밤을 같이 보냈는데, 그는 경찰에 쫓기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를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카타리나 블룸은 그가 아파트를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고, 아는 남자가 제공한 별장 열쇠도 제공했다. 그가 붙잡힌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고 그 후에도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사실의 전부였다. 

그날 아침 곧바로 경찰이 들이닥쳐 카타리나 블룸을 체포했고, 그 현장에는 <차이퉁>이라는 신문의 사진기자가 함께였다. 그 때부터 <차이퉁>은 확인되지 않거나, 왜곡된 내용을 선정적인 헤드라인과 함께 기사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사실의 전부는 카타리나 블룸 혼자만 아는 사실이었고, 그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기자가 생각했고, 원했던 방향으로 사실은 왜곡된 채 흘러간다. 

카타리나 블룸의 얼굴과 이름이 전면에 공개되며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이미 결론이 난 사실처럼 보도되었고, 그녀의 개인사, 주변인과의 관계를 왜곡시켰다. 그렇게 그녀의 인격과 명예는 짓밟혔다. 

그녀는 경찰에 쫓기는 범인을 범죄자를 도망가게 했으나 수사를 방해할 목적이 있지 않았고, 범죄로 처벌당한 일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간의 기사로 인해 사실상 명예살인을 당한 셈이었다.  

나흘이 지난 후 카타리나 블룸은 왜곡된 기사를 썼던 기자를 집으로 불러 총으로 쏴 죽인 후 약 7시간 동안 후회의 감정을 느끼려 노력했으나, 조금도 후회되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고, 체포해달라고 경찰에 자수했다.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좋은 책이나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만 읽을 수 있는, 그래서 젊은 날 읽을 수 있는 책들이었다. '카타리나 블룸의 읽어버린 명예'는 조금 다른 결이다. 지금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듯한, 생생한 전개를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대비했다. 같은 상황에서, 카타리나 블룸은 명예를 실추시킨 이를 찾아 총으로 쐈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을 택했다. 

'진실'을 '진실'로 보여주는 것보다 '사실'을 왜곡하는 게 더 쉬운가. 

'힘'은 의도하면 '왜곡'할 수 있다. 

그러니, 항상 '힘'은 정직해야 한다. 

한 문장을 단순화하면 힘이 있고, 상식적이다. 다만, 축약에 따라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 '힘'이 정직하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이 남아버렸다. 이 질문에 대답할 무언가를 또 찾아야겠다. 그게 책이든, 삶이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