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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퇴근길 생각] 버려야 얻는다.

캬옹몽몽이 2020. 11. 4. 00:04

회사가 상암으로 이사가면서 출퇴근 시간이 확연히 늘어났다. 집을 나서 회사 사무실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무려 2시간으로 하루에 4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이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겠다는 마음에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주까지는 넷플릭스의 수장 리드 헤이스팅스가 쓴 '규칙없음'이 흥미로워 그럭저럭 읽었는데, 이번주는 출퇴근 시간에 단 한줄도 읽지 않아 죄책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원인은 무선이어폰이다. 집을 나서 역까지 걸어가는 15분 동안 멍하니 걷기 싫어 팟캐스트를 듣는다. 역에 도착해 지하철 탑승구에 서면 자연스레 가방에서 책을 꺼내야 하는데, 그 찰나의 귀찮음은 내 손을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 등을 뒤적거린다. 자리가 나서 앉게 되면 책을 꺼내기가 훨씬 수월해지는데도 마냥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오는 동안 책을 볼 수 없으니 이어폰을 꺼내들고 뭔가를 듣다가 지하철을 타면 책을 꺼낼까 하다가도 지친 퇴근길에 뭘 또 읽으며 집중하랴 좀 쉬자 하는 생각에 또 스마트폰이다. 그런데 오늘은 상황이 달라졌다. 무선이어폰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변수가 생겼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 쓰지 않을 때에는 항상 충전기에 꽂아두는데 오늘은 그런데도 켜지지 않았다. 결국 이어폰을 가방에 넣고, 책을 꺼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겠다는 두마리 토끼 잡는 전략에 욕심을 부렸지만 결국 하나에만 집중해야했고, 나머지는 과감히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다.

가방에는 매년 새롭게 나오는 트렌드 코리아 21년판과 월간 채널예스 10월호가 있었다. 트렌드보다는 책소개가 읽고 싶었다. 이번호 표지는 장기하라서 더 그랬다. 나는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가진 이를 부러워하고 동경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이라 더 그렇다. 장기하는 최근에 자신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출판해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가 쓰는 자유로운 노래가사처럼 에세이도 그럴 것이라 느껴졌다. 서점 갈 시간이 생기면 읽어봐야겠다. 

채널예스에는 '박서련의 짧은 소설' 코너가 있다. 정말 짧은 소설이 실리는데, 이번 소설의 제목은 '추석 목전'이며, 내용 중 아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명절 전후에 느껴지는 가족들간의 시기, 질투로 둘러쌓인 쑥떡거리는 모습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듯 해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거늘 그 얘기를 한참 뒤에야 쉬쉬하며 들려주는 어른들의 좀스러움, 그 일에 엮여 있는 모든 내심들이 놀라웠다..... 

역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려는데 허기가 밀려왔다. 이미 늦은 시각이니 과한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고, 간단한 요기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과자는 싫고, 씹으면 음식이라 여길만한 뭔가가 필요했다. 문득 '에그드랍'이 떠올라 검색해보니 역에서 33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거리를 걸을만큼 간절하진 않았지만 발길을 정했으니 걸었다. 오후 10시가 넘어가고 있어 영업종료 선언을 들을 것 같았지만 일단 갔다. 역시나 영업이 끝났다고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역 주변을 둘러봤다. 이 동네에 살게 된지 2년여가 되어가지만 이 곳을 지방 변두리라고 여긴 적은 없었다. 서울 번화가에 있는 매장은 그대로 옮겨놓은 듯 이 곳에도 다 있다. 특히 프랜차이즈라면 역 주변에 다 있다. 그런데, 역 근처 한복판에 자리잡은 지방 어딘가에서나 볼 수 있는 호텔나이트 같은 건물을 보니 주변과 어우러지지 않고 도드라져 굉장히 생경했다. 그 건물은 이 동네가 이렇게 번화하기 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던 듯 요사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 건물이 먼저일지, 주변의 고급 아파트가 먼저일지 찾아보고 싶은 약간의 흥미가 생겼다. 당장은 내 허기를 채워야했기에 집으로 향했다.

역 앞 정류장에는 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15분 이상은 걸어야 하는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들 뒤로 같은 무리가 되어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애초에 아직 만보를 걷지 못했고, 집까지 걸어가면 만보는 무난히 채워지니 걷는게 맞았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과일장수가 있었다. 그걸 보니 사과가 먹고 싶었다. 아마도 있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 씻고 아내에게 사과가 있는지를 물었더니 땅콩잼과 함께 내주었다. 모델 이소라가 다이어트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소개해줬는데 그렇게 맛있다고 했다. 사과를 베어물었을 때 느끼는 즙의 맛과 땅콩잼의 찐득한 맛이 어우러지니 괜찮았다. 하지만, 살이 빠질런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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