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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 돌멩이

캬옹몽몽이 2022. 6. 2. 15:39

설거지하며 영화보기

요즘은 넷플릭스로 영화 한편 틀어놓고 설거지를 한다. 보는 것보다는 들으면서 해야 하기에 외국영화보다는 한국영화를 본다. 오늘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기로 했다. 

1998년에 개봉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가 넷플릭스에 올라와있어 다시 봤다. 여러번 봤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보듯 생경했다. 많은 곳에서 인용되는 영화이다보니 여러번 봤다고 느낀 것이다. 처음 볼 때에는 당시 가장 스타였던 심은하를 보려고 봤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한석규를 바라보게 됐다. 

병으로 인해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정원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전하고 조용하게 일상을 보낸다. 그런 그 앞에 다림이 나타나며 서로는 호감을 가지게 된다. 죽음 앞에서 괴로워 몸부림 치는 모습도, 불꽃같은 사랑으로 취하지도 않고 그저 잔잔하게 일상에 녹여든다. 서울랜드에서의 데이트는 그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가 되었고, 정원은 끝내 병원으로 향하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다림은 몇번의 사진관 방문 후에 발걸음을 돌린다.

영화는 정원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건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에 배제해 버린 듯 하다. 그가 시한부의 생을 살고 있는 것이 주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병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친한 친구와 술을 먹고 약간의 일탈을 저질렀을 뿐이다. 아버지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가르쳐주다 답답해 했는데 그건 시간이 얼마 나지 않았기에 찾아오는 불안이었다. 평소와 같은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불안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인걸까.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 정원에게 화가 나 다림(심은하)이 사진관에 돌멩이를 던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고 기억했는데 마지막은 다림이 사진관에 걸려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웃고, 정원(한석규)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으며 마무리된다. 요즘 같으면 사진관에 불이라도 질러버렸을 것만 같은데 그 감정의 분출이 고작 돌멩이 하나여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은 편지에 이렇게 남겼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고맙다고 할 수 있구나. 삶이 끝나가는데 억울하거나 화내지 않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날 수 있구나. 영화를 보며 삶의 자세에 대해 조금은 배운 것 같다.

장면들은 모두 그림 같았다. 사진관의 모습도, 주변 풍경도 북적이지 않고 한적하며 조용했다. 영화는 서울의 어느 한적한 동네를 말하지만 실제 촬영은 군산이다. 개봉한지 20년 훌쩍 지났으니 이제는 그때와 같은 정취는 없을 것 같다.

여러번 봐도 질리지 않는 이 영화는 일상에서 지칠 때마다 자주 찾아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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